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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 김일훈선생 탄신 112주년, 한의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전설의 명의, 인산선생의 구도적 인술,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

박인주 | 기사입력 2021/06/01 [14:11]

인산 김일훈선생 탄신 112주년, 한의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전설의 명의, 인산선생의 구도적 인술,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

박인주 | 입력 : 2021/06/01 [14:11]

 

드디어 터진 인산 김일훈선생의 사자후

 

 "지구의 산천정기가 산맥을 따라서 약할숙자 숙기는 서쪽으로 흐르고, 그 정기 속에 날 생자 생기는 동방으로 흐른다. 이 생기가 백두산 천지에 오게 되면 천상의 정기와 합해져 감로정을 이루고 그 힘으로 한반도는 최고의 신약 양약의 보고를 이룬다."

 

1986년 6월 20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한국일보사 대강당. 신약 출간 기념 강연을 위해 처음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인산이 사자후를 토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가는 길에 인류를 난치성 병마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겠다던 생전의 약속이 첫 이행되는 순간이었다.

 

현재의 의학수준으로는 더 이상의 방법이 없다는 말기 암 환자를 비롯하여 다양한 난치병, 괴질환자들이 경남 함양의 누옥에 구름처럼 몰려들던 시절, 밤낮 새벽을 가리지 않고 힘껏 환자를 돌보던 인산은 1992년 3월 3일, 함양읍 교산리 차남의 자택에서 유언을 녹음하기까지 6년여 동안 틈나는 대로 전국을 돌며 우주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강연회장은 늘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자신이 난치병에 걸렸거나 가족 중 불치의 환자가 있는 사람들, 여러 의학학자들과 의료업 종사자들, 선생의 인애사상을 흠모하는이들, 그리고 이미 인산의 보살핌으로 중증 질병을 고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 무렵 '거지왕'으로 유명한 김춘삼씨는 인산의학 계승 발전을 목적으로 1987년 설립된

 '민속신약연구회'의 발족식에 참여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십수년 전 내가 죽을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나의 병에 관심을 보이기도 해서 장안의 용하다는 의사들이 날 살려내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차도가 없었다. 나도 왕은 왕이니까 비서실장도 있고 비서들도 있었다. 그들이 병원 안팎을 지키면서 애를 태웠는데, 그때 나를 살려낸 것은 현대의학이 아니라 민족처방이었다. 한의, 양의가 티격태격하는데, 죽어가는 사람 살리는게 문제지 한방, 양방이 무슨 상관인가? 

 

나는 인산선생께서 특히 이 땅의 양의나 한의가 불치병 환자라면서 외면한 많은 서민들을 살려낸 사례를 숱하게 목격해왔다. 열매가 중요한 것이지 열매를 맺게 하는 꽃이 중요한건 아니다. 나는 80평생 수천명의 생명을 구해낸 실적, 바로 이것 때문에 인산 선생의 신약묘방을 이세상 제일의 인술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비밀

 인산선생은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오늘의 현실에 맞는 새로운 의술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한 적이 있다.

"나는 오늘을 사는 사람이므로 오늘날 사람의 병을 고쳐야해."

 

 그는 고금의 어떤 문헌에도 얽매이지 않고, 현실의 필요에 맞게 모든 것을 뜯어 고치는 의술의 혁명가였다. 복잡하고 어려운 약화제보다는 간단명료한 식이요법이나 뜸법을 더욱 중요시했으며 종래의 전통이나 권위 따위에 구속되지 말라고 강조하면서 모든 심오한 진리와 병 고치는 길은 단순한데 있다고 가르쳤다.

 

의료기관도 의료인도, 의료술도, 처방도, 약도 필요없는 사회...,저마다 자신의 암, 난치병을 스스로 치료할 수 있는 '무의촌 세상' 이 되기를 희망했던 인산은 마지막 가는 길에 결정적인 그러나 매우 간단하여 누구나 자신의 지병 치료에 활용할 수 있는 지극히 간단한 묘방을 알려주었다.

"내가 여러가지 처방을 일러주지만 이 탕약은 보조약이고, 암을 다스리는데 주장약은 밭마늘하고 죽염이거든, 약이라는건 돈 안드는데 있어, 돈 드는데는 사기꾼이 붙으니까 좋은건 안 나오기로 돼 있잖아?"

 

인산선생은 또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옛의서인 본초는 지나치게 복잡하여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평생경험만 하다가 늙어죽게 만들어, 그런짓은 어릴적에 다치워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으니, 앞으로의 세상에는 그런일이 없게 하려고 해, 한가지 약으로 천하의 만병을고칠 수 있는 법을 전해서 말이야."

 

 인산은 과거 의서가 쓰인 시절이 지금과는 생활환경 자체가 다르고 발병양상이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옛 의서의 방약에 주로 의존하고 있는 오늘의 한의학과 병든 부위를 수술로 제거하고 레이저 광선으로 쪼이는 등의 비순리적 치료에 몰두하느라 인체의 자연치유 체계를 도외시하는 서양의학의 문제점 등을 지적하면서 '해독보원', 즉 몸안에 축적된 중금속독을 비롯한 각종 독소를 제거하고 스스로를 살려낼 수 있는 원기를 회복시켜주는 것이 치병의 관건임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약속한데로 한 가지 약으로 만병을 다스리는 촌철활인의 묘책을 내놓았으니 "밭 마늘을 구워 죽염에 찍어 먹어라." "단전이나 중완, 전중에 쑥뜸을 떠라,"  "골절 등 뼈에 문제가 생기면 국산 홍화씨를 복용하라,"  "속초산 마른 명태와 유황오리, 생감감초탕을 늘 달여 마셔서 공해독을 해독하라" 등의 방법론이 바로 그것이다. 그 중심에는 마늘을 구워 죽염에 찍어 먹어라는 불멸의 묘방이 있다.

 

인산 잠들다

 1986년 6월 20일 제1회 강연회를 시작, 1992년 3월 3일 마지막 30회 '세상에 남기는 유언' 까지 인산선생은 총 53시간 동안, 가슴속에 품고있던 우주와 신약의 마지막 비밀을 모두 밝혀놓았다. 마지막 유언을 녹음하게 한뒤 두달 조금 지난 1992년 음력 4월 17일, 저녁 인산은 함양읍 교산리 차남의 자택에서 향년 84세를 일기로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쳤다.

 

 인산의 부음을 듣고 그의 활인구세 인애사상과 인품을 흠모하던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마치 구름같이 몰려들어 깊은 애도의 물결을 이루었으며 사후 49일 째인 1992년 6월 1일 선생의 육성 전문은 활자화되어 <신약본초>라는 이름의 책으로 인산선생의 각령전에 바쳐졌다.

 

이제 인산선생의 몸은 비록 이승을 떠나고 없지만 그가 밝힌 신약묘방과 그가 꽃피운 76년간의 무료 구료신화는 '영원한 전설'로 우리들의 가슴속에 끄지지 않는 등불이되어 길이 살아있을 것이다.

 

인산 김일훈선생이 지구에 오신지 112주년 을 맞이하여 선생의 뜻을 기리며...

 

 

셋째며느리 인산한의원 최은아 한의학박사가 건강기능식품 미라클 캡슐을 만들어 활인구세의 대를 이어가고있다.

인산Aibio 박인주 010-9565-1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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