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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소금 발명가이며 오핵단, 삼보주사, 세계최초로 100% 천연약리 신물질로 한방암치료의 새로운 신화를 창조한 인산 김일훈선생 그는 누구인가

박인주 | 기사입력 2021/04/05 [14:41]

대나무소금 발명가이며 오핵단, 삼보주사, 세계최초로 100% 천연약리 신물질로 한방암치료의 새로운 신화를 창조한 인산 김일훈선생 그는 누구인가

박인주 | 입력 : 2021/04/05 [14:41]

 

"장안에 묘향산 유불이 나타났다"

 

인산은 공주 마곡사 부근에서 장남과 논산시 상월면 상도리 용화사터에서 차남 대전에서 딸 함양군 휴천면 월평리 살구쟁이에서 삼남을 얻게 된다. 잠시 서울로 올라가 함태영 부통령이 총재로 있던 삼일정신 선양회의 전국 조직화 사업을 돕고, 경남 함양 지리산 기슭의 살구쟁이 마을로 내려가 함지박을 깍으며 5년여 동안 은둔생활을 한다.

 

선생은 61년, 서울로 올라가 친지들의 집에 머물면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난치병 환자들을 치료한다. 당시 인산의 의술은 절정에 이르러 일반 의료인들은 상상도 못할 신묘한 처방과 약재들을 쓰는 한편, 침이면 침, 뜸이면 뜸, 환자의 병중과 근기에 따라 최적의 치료법을 자유자재 구사한다. 이 때 서울 성북구 미아동 산 111번지 삼각산 기슭에서 4남을 얻게 된다.

 

그 무렵 서울 광나루의 어느 절에 머물던 어대사라는 시각장애인 스님에게 쑥뜸을 떠서 시력을 회복시킨 것을 비롯해 여러 명의 소경들에게 자신의 독특한 뜸법을 시술, 꼽추의 등을 펴게 하는 등 신비의 인술을 펼쳤다. 사람들은 일제 때 인산이 묘향산에 은거하면서 병든 사람들에게 여러 이적을 보았으며, 바로 그 장본인이 지금 서울에서 난치병 환자들을 구료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는 "장안에 묘향산 활불이 나타났다"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70년대에 인산선생은 서울에서 여러 곳을 옯겨 다니며 성혜한의원,, 세종한의원의 원장을 지냈고 고려한방병원의 고문을 맡기도 했다. 평생 무료구료 활동을 한는지라 놀라운 의술을 펼치면서도 인산선생은 일정한 주거지도 없었고, 월세를 마련하지 못해 자주 거처를 옮겼으며 항상 남루한 차림이었다고 주변 사람들은 회고한다. 

 

특히 서간도에서 독립운동 시절 함께 고문을 당했거나 일본헌병의 총에 맞아 죽은 동지들의 얼굴이 떠올라 편히 지낼 수 없다며 고난을 자청, 한 겨울에도 방에 불을 때지 않고 맨바닥에서 자는 날이 많았다고 선생의 자녀들을 전한다.

 

의학의 혁명, 혁명의 의학 <신약>

 

인산선생은 72세 때인, 1980년, 암을 비롯한 현대 난치병을 담은 한문본 <우주와 신약>을,

1981년에는  역시 유사한 내용의<구세신방>을 저술, 출간하였다. 그러나 이 책들은 대부분 한문 투의 글인데다 워낙 심오하고 난해하여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읽히지 않았다. 인산은

1981년 12월 말경, 서울을 떠나 경남 함양으로 낙향하여 틈틈이 후세에 전할 <신약본초>를 집필하는 한편 물어물어 찾아오는 환자들을 인연 따라 구제하였다.

 

이에 앞서 1981년 5월부터 인산은 당신의 독특한 인술세계를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한다는 한 자식의 간청에 따라 자신의 혜안으로 밝혀낸 신약묘방과 경험의방들을 구술하여 인명과 체험의학, 수행인의 건강학이란 제목의 칼럼으로 불교신문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당시 불교신문사 편집부 기자로 재직하던 차남이 인산의 구술을 받아 적어 정리한 뒤 다시 인산선생의 감수를 받아 재정리하여 신문에 연재하였고 이러한 작업을 5년여 한 끝에 1986년 6월 15일, 드디어 의학 역사상 초유의 인산의학과 사상을 현대문장으로 집대성한 540여 페이지 분량의 책을 완성시켜 출간하게 된다. 그 책이 바로 의학의 혁명이자 혁명의 의학을 담은 <신약>이다.

 

<신약>이 출간되자 의료면허가 아닌 실력에 의한 치료, 형식으로서의 의료가 아니라 실제로 사람을 살리는 의료에 대한 대중들의 욕구가 분출하기 시작했다.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선 사람들, 병상에서 퇴출된 가망 없는 환자들이 신약에 매달려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신약>이 세상을 뛰어넘어 당시로서는 놀라운 부수가 판매되었고, 책을 읽은 사람들이 인산의 함양 초막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월간 여원 1986년 7월호는 타오르기 시작하던 <신약>의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무려 7퍼지 분량으로 대서특필, 당시 최고의 판매부수를 기록했고, 이어 각 일간지 월간지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였다. 인산의 자택을 가리켜 난치병 환자들의 종착역이라고 했던 유명한  표현이 등장한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

 

현재 세계최초로 한방암의학 창시자 인산 김일훈선생에게  직접 전수받은 셋

째 며느리 최은아 한의학박사가 선생의 가르침대로 미라클 켑술을 만들어 활인구세의  맥을 이어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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